어머니의 마음으로 이어진 생명나눔 행렬, 환자들에게 새 희망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학교병원 지하 1층의 ‘피아노라운지’는 환자와 내원객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가 수시로 열리는 곳이다. 건물의 중심인 이곳은 1, 2층에서도 계단과 복도 사이 열린 공간으로 내려다보이며 유리 지붕을 통해 하늘까지 바라볼 수 있어 밝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던 8월 30일 월요일, 이곳에 특별한 행사가 마련돼 주위의 이목을 끌었다. 사단법인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가 2004년부터 전국 주요도시에서 전개해온 ‘헌혈하나둘운동’의 서울 지역 행사가 열린 것이다. 이번 행사는 각종 사건사고, 난치병 등으로 수혈이 필요한 긴급환자들과 경제적 형편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건강한 혈액을 제공하고 헌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건국대학교병원(병원장 백남선) 측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대한적십자사 서울동부혈액원(원장 서준석)이 약 30명의 의료진을 지원하는 등 적극 후원했다.
행사장에는 헌혈자들을 위한 간이침대 22개가 놓이고, 1층 바깥의 응급실 앞에는 헌혈차 2대가 추가로 배치되어 모두 30개 침대가 제공됐다. 일찍부터 몰려드는 인파로 행사는 예정된 10시가 조금 못 되어 곧바로 시작됐다.
이날 헌혈하나둘운동에는 주부, 대학생, 직장인 등 위러브유 서울 강북지역 회원들을 중심으로 내원객, 병원 임직원까지 1천여 명이 참여했다. 헌혈에 참가하려는 행렬이 길어 사전검사를 마치고 헌혈하기까지 한두 시간이 거뜬히 걸렸지만 다들 질서 있게 차례를 기다렸다. 급히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 직장인 회원들이 있을 때는 순서를 양보하고 배려하는 미덕도 보였다.
위러브유 장길자 회장, 이순재 후원회장, 김성환 친선대사, 이강민 이사장 및 이사진들은 오후 2시경 행사장을 방문하여 헌혈에 나선 회원들을 직접 격려했다.
“좋은 일 하시니 감사합니다. 한 생명을 살린 거예요. 건강하세요.”
덕담과 함께 따뜻이 손 잡아 격려하는 회장님의 격려에 회원들의 얼굴에는 선행을 하고 엄마의 칭찬을 들은 아이들마냥 미소가 번졌다.
인기 탤런트 이순재 후원회장과 김성환 친선대사는 회원들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많은 관심을 끌며 헌혈행사를 널리 알렸다. 김성환 친선대사는 “헌혈의 중요성은 알지만 용기가 없어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많은 회원들이 동참해주실 줄 상상도 못했다. 한 생명을 살리는 마음으로 헌혈해주시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회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백남선 건국대병원장도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이렇게들 자발적으로 많이 참여할지 몰랐다. 정말 대단하다. 날개만 없지 다들 천사다”라며 앞으로 위러브유에서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도울 일이 있다면 병원 측에서도 적극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행사장을 방문한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도, 더운 날씨에 병원을 찾아준 회원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여러분들이 헌혈한 귀한 피는 수술환자, 혈액질환자, 사고환자들에게 생명이 될 것”이라며 “내 가족, 내 이웃을 살린다는 마음으로 헌혈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환자를 가족같이 대하는 의료진들의 마음은 위러브유 회원들의 마음과 그대로 일맥상통하고 있었다. 평소 이웃을 돕는 일에 발벗고 나서온 회원들은 “혈액 부족으로 수술이 지연되는 환자나 그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했다. 이날 헌혈자의 약 70%를 차지한 주부 회원들은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됐다”면서 자신의 피를 전달받게 될 환자들이 새 생명을 얻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헌혈의 중요성을 시민들에게 알려 더 많은 이들을 동참시키기 위해 공개된 장소에서 진행된 이번 서울지역 헌혈하나둘운동은 회원들과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예정시각 오후 4시를 훌쩍 지나 5시를 넘겨서야 마무리됐다. 병원 교직원들도 짬을 내어 헌혈에 동참했으며 주위에서 지켜보던 환자 보호자들과 내원객들도 행사에 대해 문의하며 동참해왔다. 패혈증으로 수개월간 입원 중인 대학생 딸이 헌혈행사를 지켜보고는 자기도 동참하고 싶다고 해서 겨우 말리고 왔다며 딸의 수술에 쓰고 남은 헌혈증 2매를 기증한 중년 부인, 뇌수막염으로 입원한 아이와 같이 헌혈행사를 지켜보다 아이가 ‘엄마도 빨리 하라’고 졸랐다며 헌혈을 하고 부랴부랴 아이와 검사실로 달려간 아이 엄마 등 이날 헌혈 행렬처럼 감동적인 사연도 잇따랐다.
이날 채혈에 성공한 헌혈자는 모두 440명. 이웃을 위해 기증해온 헌혈증은 그 이상이 모였다. 행사가 마칠 때쯤 한 병원 관계자가 말했다. “이렇게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운 모습일 줄 미처 몰랐다. 우리 국민들이 다시 보인다”고. 또 다른 병원 관계자가 말했다. “예전에는 남성들이 용기를 내서 헌혈을 많이 했는데 여성 분들의 참여가 무척 눈에 띄었다. 아기 낳은 엄마들은 확실히 다르다. 어머니는 정말 용감하고 강하다”고.